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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O V E L/저주받은 나라

저주받은 나라 3부 - 03

by waitress 2013. 1. 13.

3부、 가시나무 숲

 

달이 밝은 밤이었다. 미르가지아가 그들을 위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지만 리나는 홀로 숙소 밖의 뜰을 거닐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나, 인간이여?”

 

미르가지아가 리나의 등 뒤에서 나타나 말을 걸었다. 갑작스런 소리에 리나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놀랐다면 미안하다.”

 

“네에, 미르가지아 씨였어요? ……머릿속이 좀 복잡해서요, 잠이 오질 않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생각해보니 자네들이 이 곳에 올 이유는 없었던 것 같은데. 저 합성수 사내와 비슷한 시기에 온 것도 그러하고 말이다.”

 

“아, 저는 다른 목적으로 온 것이에요. 이제는 그 목적이 사라져 버렸지만요.”

 

“흠?”

 

“제르가 클레어바이블을 보고 왔다니 그걸로 됐어요. 그리고 그 녀석과는 정말 우연히 만난 거예요. 저랑 가우리는 사정상 그 녀석을 찾으러 다니지 못했거든요. 메피한테 빚이 하나 생겼네요, 하하.”

 

리나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바닥의 낙엽을 하나 밟았다. 바싹 마른 나뭇잎이 건조한 소리를 내며 바스러졌다.

 

“제르 녀석 괜찮을까요? 그토록 찾아 헤매던 클레어바이블인데, 그것도 원본에게 그런 말을 들어버렸으니 말이에요.”

 

“설마 짐작조차 하지 못했겠나.”

 

“그야 그렇지만 뭐랄까, 너무 담담한 반응이니까요. 충격을 너무 받아 그러는 것은 아닐지 싶어서.”

 

“그래서 내가 그 인간에게 열심히 장난을 쳐 주지 않았나. 이 몸의 숙련된 스킬 덕분에 긴장이 조금은 풀렸을 거다.”

 

“미르가지아 씨이~.”

 

리나가 볼멘 소리로 이름을 부르자 미르가지아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어쩌다 이 미르가지아가 인간들의 고민 상담이나 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군. 난 비싸다.”

 

리나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 들어올렸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달빛에 길게 드리워졌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찌되었든 그 인간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겠지?”

 

“그야 그렇죠. 제르는 원하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평생 돌아다닐 각오이니까요.”

 

“평생이라―. 그런 정도의 문제라면 아마도 아직 그의 깊숙한 곳에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받아들이지 못한다고요?”

 

미르가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 극복하는 것, 그리고 반대로 절망해 쓰러져버리는 것도 모두 진실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

 

“조금 더 그를 기다려주게.”

 

“그렇군요. 아직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거군요…….”

 

리나가 작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리나의 걸음 속도가 차츰 느려져 미르가지아와의 거리가 생기고 있었다. 미르가지아가 그런 리나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가라앉은 금빛의 눈동자와 마주친 리나의 붉은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미르가지아가 나직하게 덧붙였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인간 소녀여, 내게는 그대 역시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만.”

 

“그, 글쎄요. 전 아무것도―.”

 

“힘든 일이 있었나?”

 

“…….”

 

리나가 고개를 돌려 미르가지아의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보이는군.”

 

“어떻게 아셨나요……?”

 

“인간 소녀여, 지금 그대가 합성수 사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가요.”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나? 그렇다면 더, 더 힘들어해 보게. 미쳐서 몸부림을 칠 때까지. 그래도 도망치지는 마라.”

 

미르가지아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리나가 어깨를 부르르 떨고는 힐끔 미르가지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오랫동안 이 세상을 지켜본 그의 눈동자에는 금색의 마왕을 생각나게 할 만큼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 힘들어하라구요……?”

 

피브리죠, 루크. 리나는 지난 두 번의 사건으로 충분히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더한 일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리나가 미르가지아를 찾아오게 만든 ‘세 번째’의 사건이 발생해 버렸다―.

금새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리나는 눈가를 적신 눈물이 흐르지 않게 눈을 깜빡였다.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것 아니에요, 미르가지아 씨?”

 

“이래봬도 천 년은 넘게 살아온 인생의 선배잖나.”

 

미르가지아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여전히 그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리나는 바로 직전까지 울적해 했던 것도 잊고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왜 그러나, 인간이여?”

 

“아니에요, 그 말이 맞네요. 저는 고작 20년밖에 살지 못했으니 미르가지아 씨 정도라면 그야말로 대선배님이시죠.”

 

리나가 계속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틀어막았다. 급격히 바뀌어버린 감정을 다잡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미르가지아는 말없이 리나의 옆에 서서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리나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고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축 늘어져있던 어깨에 기분 좋은 짜릿함이 흘렀다.

 

“그러면 인생의 선배인 미르가지아 씨께 한 가지만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싫다.”

 

“…….”

 

“…….”

 

“저, 이야기만이라도 들어 주시면 안 되나요……?”

 

이런 예상외의 반응이라니, 역시 미르가지아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리나가 쭈뼛거리는 사이 미르가지아는 흥 하고 콧바람을 냈다. 그럴 줄 알았다, 라고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으며.

 

“들어주는 정도라면.”

 

미르가지아가 못마땅한 듯 대답했다. 그에 리나가 다시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나 미르가지아가 리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내 말이 우스운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통에 리나는 곧 연신 사과를 해야만 했다.

 

“……나에게 물어볼 것이라면 대충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는 짐작이 간다. 오늘은 나의 숙면을 방해하려고 작정하고 온 건가, 인간이여?”

 

“으음, 그럴 지도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또 어디선가 마왕 하나를 해치웠다는 이야기는 아니길 바라야겠군. 최근에 이 일대 산적이 괴멸하고 산불이 자주 발생했다고 하던데, 그것과 관계가 있나?”

 

“윽, 전혀 없다고는……! 그, 그래도 요새 건조했으니까, 자연히 발생한 산불도 있을 거예요!”

 

“그 말은 즉 한두 군데에 산불을 발생시키기는 했다는 말인가.”

 

“……죄송합니다.”

 

리나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차라리 산불이 문제였다면 다행일 것이었다. 리나의 얼굴이 굳어지다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무슨 말부터 시작을 할까, 한참 단어를 고르던 리나가 바로 옆의 나무 그루터기에 주저앉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해장군 키르샤에 대해 아세요?”

 

리나가 가우리와 함께 용들의 봉우리를 찾은 것은 오로지 제르가디스에 대한 것만이 목적이었다. 마족에 대해 캐물을 생각 따위 추호도 없었다. ‘그 날’ 밤 가우리의 말마따나, 비록 상대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원수는 갚았고 그 뒤는 세일룬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그러나 조금 전 미르가지아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나 역시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려나.’

 

리나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사건 이후 리나는 그저 가득 차오른 짜증을 산적에게 퍼붓기만 했을 뿐이었다. 키르샤를 내쫓은 이후 세일룬이 어떻게 되었을까, 크로펠 씨는 브니두 등을 내치고 전쟁을 막아냈을까? 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귀를 닫은 탓에 리나는 지난 한 달여간 세일룬에 대해 떠올려 본 적도 없었다. 때마침 클레어바이블의 사본을 발견해 급히 용들의 봉우리를 찾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돌아가지는 못할지언정 세일룬에 대한 소식을 찾아보기라도 할 것을. 뒤늦은 후회가 일었다.

 

우선은 해장군, 혹은 해왕의 목적을 알아야 했다. 그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미르가지아가 유일할 것이다. 리나가 대답을 기대하며 미르가지아를 바라보았다. 늘 딱딱하던 미르가지아의 얼굴이 유난히 굳어 있었다.

 

“……그 자를 어떻게 알고 있나?”

 

“네……?”

 

“해장군, 그 자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물었다.”

 

“아, 그건 우연히,”

 

미르가지아가 앉아있는 리나의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억센 손가락이 리나의 어깨를 파고들었다.

 

“아, 아파요, 미르가지아 씨!”

 

“우연히 라고? 해장군, 아니 해왕은 천년 전의 항마 전쟁 이후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얼마 전 마왕의 조각 하나가 루크라는 인간의 몸에 부활했을 때에 나타난 것이 처음이었어. ……그런 해왕의 수족을 우연히 만났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인가 인간이여?”

 

미르가지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마치 3년여 전, 디루스에서 패왕 그라우쉐라를 목전에 두었을 때처럼. 그가 느끼는 두려움이 전해져 리나 역시 마른침을 삼켰다.

 

“……얼마 전 세일룬에 찾아갔는데, 해장군……, 키르샤가 세일룬의 왕녀로 변신해 있었어요. 용병을 모으고 있었으니 아마도 전쟁이라던가 뭔가를 꾸미고 있던 것 같아요.”

 

“전쟁을?”

 

“네,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이전 디루스 왕국에서 패왕 그라우쉐라가 움직였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때의 그라우쉐라처럼 ‘식사를 하고 있다’라고만 했어요. 또다시 봉인된 마왕의 조각을 찾아내려는 것인가 물었더니 자신에게 그럴 능력은 없다고, 그냥 식사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미르가지아 씨에게 여쭈어본 거예요. 혹시 마족의 다른 움직임이 있나 해서요.”

 

“그래서, 뭔가 싸움이 벌어졌나? 성은, 도시는 무사한가? 왕은?!”

 

리나의 말을 낚아채듯 미르가지아가 질문을 던졌다. 늘 냉정하던 그답지 않게 흥분한 모습이었다. 리나가 앉은 나무 그루터기 옆에 한 사람분의 자리가 더 있었지만 미르가지아에게는 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리나가 고개를 갸웃 흔들며 대답했다.

 

“일단은 성 안에서 싸운 것이니까 벽이 조금 무너지기는 했지만 나머지는 무사해요. 필리오넬 전하는 한 달 정도 전에 병환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구요. 왕녀인 아멜리아는, 아, 명왕 피브리죠 사건 때에 같이 왔던 여자아이에요, 아멜리아가 국왕 대리로 업무를 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해장군 키르샤란 녀석이…….”

 

리나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미 정해진 사실이지만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어렵기만 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초간을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지만 미르가지아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도 더 새파랗게 질린 채였다.

 

“미르가지아 씨?”

 

“세일룬의 다음 왕이 어떻게 되는지 혹시 알고 있나?”

 

“글쎄요, 필리오넬 전하의 동생이 뒤를 이으려나? 예전에 여러 일이 있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이 또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제1왕녀는 가출한 뒤로 행방불명이고, 아멜리아에게 다른 형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미르가지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시죠? 계속 왕에 대해서만 말씀하시고요. 세일룬의 왕과 해장군이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아무것도 아니다. 마족으로 인해 인간의 국가가 멸망 당한다면 신을 섬기는 자로서 그들을 볼 낯이 없지 않겠나.”

 

“네에, 그렇긴 하겠네요.”

 

리나가 적당히 맞받아쳐 보았지만 미르가지아의 반응은 없었다. 리나는 좀 더 캐물으려다가 여전히 굳어있는 미르가지아의 표정을 보고는 말을 삼켰다.

 

“세일룬은 그렇게 약한 나라가 아니니까 너무 염려는 마세요. 아직 전쟁 같은 것이 터진 것도 아니잖아요. 왕이 죽었다고 해서 설마 나라 자체가 무너지기야 하겠어요?”

 

“그러나 왕의 병사에 이어 왕녀가 죽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라가 몹시 혼란스러울 텐데. 별 일은 없었나?”

 

“그건……, 아멜리아가 그렇게 되고 바로 세일룬을 떠나버려서 잘은……. 마족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 것은 같지만, 세일룬의 관리 한 명이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어요. 믿을 만한 사람이니 잘 처리했을 거예요. 이미 한 달 가까이 지난 일이니 지금쯤은 뒷수습이 끝나지 않았을까요?”

 

“그런가.”

 

미르가지아가 짧게 대답하며 입을 닫았다. 리나는 여러모로 석연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분명 종족간의 문제일 일에까지 신경을 써 줄 여유는 자신에게 없었다.

 

“이야기가 많이 샜네요. 그 때 키르샤를 공격해 쫓아냈지만 소멸시키지는 못했어요.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다면 곤란해요. ……말해주세요, 해장군 키르샤에 대해.”

 

미르가지아가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나도 아는 것은 거의 없다. 해왕은 말했다시피 항마전쟁 이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해왕의 두 심복 중 신관은 항마전쟁 때에 봉인 당했다. 그게 전부이다.”

 

“그러면 적어도 세일룬에 해왕 신관은 없다는 거네요. 그런데 장군이 움직였다는 건…… 혹시라도 말씀하신 봉인이 풀린 것은 아닐까요?”

 

“아니, 해신관의 봉인은 우리 용족이 한 것이다. 해제가 되었다면 내가 알 수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되. ……그리고 지난 번 마왕의 조각이 부활한 이후로 마족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우리 쪽에서도 조사를 해보도록 하지.”

 

“네, 부탁 드려요. 뭔가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맘에 들지는 않지만, 어쩌면 정말로 ‘식사’를 하려 한 것뿐일 수도 있겠죠.”

 

“음, 그렇다면 좋겠군.”

 

설명을 마친 후 미르가지아는 입을 다물었고 리나 역시 더 이상의 질문은 없었다. 스산한 밤바람이 둘의 사이를 메웠다. 달이 구름에 가렸을 즈음 둘은 말없이 각자의 잠자리로 돌아갔다.

 


 


새벽 무렵 가우리는 불길한 예감에 눈을 떴다. 그리고는 옷을 대강 챙겨 입고 숙소의 문을 박차며 뛰어나왔다. 멀리에서 동이 트기 시작했는지 주변은 제법 밝았다. 가우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람결에 움직이는 나뭇잎 사이로 움직이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가우리? 벌써 깼어?”

 

목소리는 리나의 것이었다. 리나는 재만 남은 모닥불 앞에서 생선구이를 먹고 있었다.

 

“응, ……그냥. 리나 넌?”

 

“뭐야 너, 그렇게 헐레벌떡. 또 내가 도적털이를 하러 갔을 거라 생각한 거야? 아무리 나라도 이런 밝은 시간대에 일하러 가지는 않는다구.”

 

가우리는 그게 일이냐, 라고 맞장구를 치려다 입을 다물었다. 리나가 생선구이를 한 입 물었다.

 

“잠이 안 왔니, 리나?”

 

“그야 당연하지. 저녁이 너무 부실했잖아~.”

 

리나가 입을 오물거리더니 생선살 사이에 섞여있던 가시를 골라냈다. 가시가 제법 많은 생선이었는지 그렇게 가시를 뱉어내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가우리가 피식 웃으며 리나의 옆에 앉았다.

 

“뭘 잡은 거야? 나도 하나 먹어도 되?”

 

“안 돼, 나 먹기도 모자라.”

 

“쳇, 치사하기는.”

 

가우리가 투덜거렸지만 리나는 못들은 척 계속 입을 오물거렸다. 입 안에 든 생선살은 줄어들지도 않는 듯 리나는 계속 입을 움직여댔다. 그런 리나의 옆에 놓인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생선구이는 이미 차갑게 식은 듯이 보였다.

 

“……가시가 많은가 보네. 다른 것으로 잡아다 줄까?”

 

“아니, 괜찮아.”

 

리나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우리가 한숨을 내쉬며 리나의 옆에 벌렁 드러누웠다.

 

“가우리?”

 

“잠이 덜 깨서 그래. 신경 쓰지 마.”

 

“응.”

 

“도마뱀 할아버지도 봤고 제르가디스도 만났고, 이제 더 할 것이 없네. 어디로 갈까, 리나?”

 

“응…….”

 

“다시 세일룬에나 가볼까?”

 

가우리가 리나의 눈을 흘낏 바라보았다. 멀리 허공을 바라보던 붉은 눈동자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또다시 마족과 싸움을 할지도 모른다는 건 내키지 않고 사실 겁도 조금 나지만, ……그 녀석들이 아멜리아의 모습을 하고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찜찜하기 그지없잖아.”

 

“…….”

 

리나가 말없이 생선구이 한 조각을 집고는 입에 물었다. 차갑게 식은 생선살에는 비릿한 향만 가득하고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듯 리나는 다시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가우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무언가를 발견한 듯 벌떡 일어나 걸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아직 펄떡거리는 생선 다섯 마리가 들려 있었다. 가우리가 리나의 옆에 주저앉아 능숙하게 모닥불을 피우고 생선을 불에 구웠다. 그리고는 먼저 두 마리를 불에 바짝 대어 굽더니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가시가 많았지만 얇은 것들뿐이라 먹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생선은 점차 그 크기가 줄어들어갔다.

남은 세 개의 생선은 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중이었다. 이윽고 가우리가 손에 든 것을 모두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난 그럼 한숨 더 자야겠다. 마저 잘 먹고 들어와, 리나. 아침에 출발해야 하니 너무 늦지는 말고.”

 

“……응. 잘 자, 가우리.”

 

 

 

 

 

 


2013.01.13 슬레이어즈 팬사이즈 린젤(http://linzel.net) 공개

2013.01.23 슬레이어즈 팬카페 클레어바이블도굴단(http://cafe.naver.com/clearbible)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