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가시나무 숲
울창한 산맥을 뚝 잘라 놓은 것만 같은 절벽의 한 쪽 자락. 그 곳에 바람 한 가닥 불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테이블 하나 남짓할 넓이의 그 공간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곳이었다. 그러나 울타리가 쳐진 것이 아님에도 그 공간만이 알 수 없는 기운으로 충만해 짐승들도 감히 그 곳을 범접하지 못하였다. 바닥의 풀은 푸른색이 아닌 백금색으로 햇빛을 반사하며 그 자태를 뽐냈다.
어느 순간 절벽이 꿈틀, 움직였다. 정확히는 절벽의 한 쪽 바위가 부드럽게 변하며 살아있는 듯이 움직였다. 이윽고 그 안쪽에서부터 다리가, 팔이, 그리고 몸통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육신의 주인은 절벽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평범한 걸음을 옮겼다.
“아……. 드디어 빠져나왔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르가디스였다. 제르가디스는 절벽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르가디스가 몇 걸음 움직였지만 절벽은 물론 풀과 나무 역시 환영처럼 그의 발을 통과했다.
“아직 완전히 빠져나온 것은 아니다. 이계의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의 영향 탓인지 이 연결부의 공간은 상당히 불안정하거든.”
“그런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어찌되었든 거의 다 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군, 인간이여.”
제르가디스의 뒤를 따라 절벽에서 걸어 나온 것은 황금용의 장로, 미르가지아였다. 미르가지아가 제르가디스의 걸음을 세우고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밟히지 않는 풀들을 밟는 듯이 발로 바닥을 부비며 양 손을 모아 이상한 모양의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의 두 손에 마력이 모이자 제르가디스는 이글거리는 듯한 화끈함에 미르가지아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움직이지 말게.”
“?”
“지금 이 길은 그물처럼 얽혀서……, 이런.”
미르가지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에 제르가디스가 의아해하며 미르가지아를 돌아다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무표정인 미르가지아의 얼굴이 어쩐지 어둡게 보였다.
“왜…… 그러지?”
“이미 늦었다. 이제 열댓 걸음이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길에서 벗어났군. 미로를 뚫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 지 나도 짐작할 수가 없다.”
“뭐, 뭐라고? 어이, 이럴 때에 장난치지 마!”
제르가디스가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푸르른 숲, 등 뒤엔 깎아지른 절벽. 백금색의 풀들이 발등을 뚫고 자라나있어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이것은 절벽에서 나올 당시부터 그랬던 것이니 이상하다 할 수는 없었다. 그 밖에 또 다른 것은……?
“장난이라니 무슨 실례의 말을. 난 언제나 진심이네.”
미르가지아가 정색을 한 채 제르가디스를 바라보았다. 그래, 달라진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는 미르가지아의 표정.
“그 말 자체가 농담이잖아.”
“…….”
“…….”
미르가지아가 말없이 수인을 고쳐 맺었다. 곧 그의 양 손바닥 사이에서 한 줄기의 가느다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마도 그 끝이 현실로 이어지는 통로. 제르가디스는 그러면 그렇지, 라며 흥 한숨을 내쉬고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여섯 발자국을 옮겼을 때 제르가디스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로 조금 전, 아찔한 현기증이 일어 고개를 한 차례 흔들었다. 그것이 다였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주위 풍광이 바뀌어있었던 것이다. 숲은 사라지고 대신 알 수 없는 색색의 혼돈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건……! 이, 이 영감탱이……! 날 미아로 만들 셈인가?!”
앞, 뒤, 좌, 우, 위, 아래. 어느 곳이 바닥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발을 내딛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뒷걸음질을 쳐야 하는지. 길조차 없는 미로 속에서 제르가디스가 사방을 살폈지만 길잡이인 미르가지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이 수십 년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던 그 때,
“바로 이런 것이 장난이라네.”
담담한 목소리가 제르가디스의 귓가에 들려왔다. 돌아보니 미르가지아가 제르가디스의 망토 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잡고 있었다. 제르가디스가 미르가지아를 돌아봄과 함께 주위의 풍경 역시 조금 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방금 것은 길에서 한 걸음 벗어난 곳의 풍경이네. 내가 이렇게 옷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영원히……, 음?”
설명을 늘어놓으려던 미르가지아가 앞쪽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말을 멈추었다. 눈앞에는 푸른 피부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붉게 달아오른 제르가디스가 서 있었다.
“……이 도마뱀 자식!!”
퍼어억!
시간의 흐름조차 꼬여있어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 알 수 없을 긴 시간을 헤매왔던 이계의 공간. 그간 미르가지아의 농담에 시달린 것이 대체 몇 번이었는지! 제르가디스의 통한의 일격은, 그러나 미르가지아의 전광석화와도 같은 방어에 막혀버리고야 말았다.
“이래봬도 꼬맹이 드래곤들과 놀아준 시간이 천년이다. 얕보면 곤란하지.”
“?!?!!”
결국 그들이 이계의 공간에서 빠져나온 것은 산에 걸린 태양이 붉은 입김을 토해낼 즈음이 되어서였다.
∽
노을을 등지고 산을 내려오는 동안 제르가디스와 미르가지아는 계속해서 툭탁거리고 있었다.
“아니, 웬 소란이야? 제르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오랜만에 보네.”
“여어.”
낯익은 두 사람의 목소리는 미르가지아의 집 앞에서 들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평균 나이 대보다 작은 가슴을 지닌 여 마도사, 그리고 머리는 텅 비었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초일류인 용병.
“리나……?”
“나는 안보이냐, 제르가디스?”
가우리가 아쉽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하하, 미안. 둘 다 오랜만인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무슨 일은, 너 때문이지. 제르 너에게 여기 소식을 전해주려고 여행 중이었는데 영 보이질 않아서, 일단 용들의 봉우리에라도 와본 거야. 그런데 마침 네가 와 있다잖아? 힘들게 먼 곳까지 왔는데 네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지~. 이틀이나 기다렸다구.”
“이틀이나?”
제르가디스가 되묻자 미르가지아가 답했다.
“클레어바이블이 있는 곳은 시공간이 뒤틀려있는 공간이다. 우리에겐 몇 시간 지나지 않은 것같이 느껴졌지만 바깥 세계에서는 적어도 이삼일이 흐른 모양이군.”
“그것 참 다행인데.”
제르가디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에 리나가 피식 웃었지만 웃음 뒤의 표정은 어두웠다.
“리나?”
“응……, 그러니까. 클레어바이블은 이미 만나 본 거야?”
“음, 뭐 그럭저럭.”
“그래, 그렇다면야 뭐……. 내가 말할 것은 없겠네.”
“말한다고?”
리나가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미르가지아 씨의 농담에 상당히 휘말린 모양이야? 그래도 기분 풀어, 제르. 물론 며칠을 같이 있어도 적응이 될 만한 그런 상대가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지만, 열내봤자 제르 너만 고달파질 뿐인걸.”
“그게 무슨 뜻인가, 인간이여?”
미르가지아가 정색하고 질문을 던졌다. 리나는 대답 대신 씨익 웃음 지었다.
“인사가 늦었지만 미르가지아 씨도 오랜만이에요. 제르가디스를 클레어바이블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시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그래도 농담을 하시면 이 벽창호 같은 녀석은 곧이곧대로 들어버릴 테니~ 조금은 줄이시는 게 나을 거예요.”
“농담이라니, 무슨 실례의 말을. 난 그저 장난을 조금 친 것뿐이다. 이 인간의 반응이 꽤 재미있거든.”
“뭐라고……?!”
다시금 발끈해서 소리치는 제르가디스를 보며 리나는 이 순간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
미르가지아의 안내로 일행은 그의 거실로 들어섰다. 집 안이 제법 어두웠기에 미르가지아가 짧은 주문을 외워 마법의 불을 여러 개 켜 올렸다. “우리 용족은 불빛 따위는 필요없지만.”이라는 작은 불평을 덧붙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대접할 음식도 없기에 일행은 준비해 온 먹을거리로 허기를 달래야만 했다.
흙과 짚으로 이루어진 벽에는 벽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의 커다란 창문이 뚫려 있었다. 창문 너머로 숲의 실루엣이 그림처럼 들여다보였다. 산이 어둠에 잠기는 풍경은 카타트 산맥의 깊은 산세가 더한 탓인지 풍미가 독특했다. 가우리는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리나는 감정을 억지로 추스르며 제르가디스는 생각에 잠겨, 제각각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칵’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나무로 만든 테이블 위에 미르가지아가 작은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였다.
“차 정도는 대접하지.”
“헤에 친절하신데요? 감사합니다.”
안쪽 주방에서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르가지아가 찻물이 든 주전자와 함께 작은 유리병 하나를 들고 왔다. 유리병 안에는 붉고 노란 마른 잎사귀가 섞여있어 오묘한 색을 발했다.
“찻잎 색이 특이하네요. 두 종류를 섞어놓은 것인가요?”
“그런 셈이다. 용들의 봉우리에서만 자라는 차나무가 있는데 향이 너무 진해서, 다른 찻잎을 섞어 만든 것이지.”
“그래서였군. 처음 맡는 향이다 싶었어.”
제르가디스는 어느덧 눈을 감고 풍겨오는 차의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르가지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차 맛은 더 좋아. 찻물도 어느 정도 식었을 테니 한 번 마셔보게.”
조르륵, 맑은 소리와 함께 찻물이 주전자에서 잔으로 옮겨졌다. 그와 함께 미르가지아가 찻잎을 각각의 찻잔에 띄우자 차의 향이 더욱 퍼져나갔다. 어우러진 두 개의 향은 쌉쌀하면서도 달큰했다. 잠시 후 미르가지아가 잔에 남아있는 찻잎을 제거했고, 모두는 누가 먼저랄 세라 잔을 입게 가져갔다.
“이야~ 이 색 좀 봐! 노을빛이랑 똑같은데?”
“두 가지의 차라. 안 어울리는 듯 하면서도 잘 어우러지는군.”
“……맛있다.”
저마다의 평으로 늦은 저녁의 티타임이 시작되었다. 리나는 제르가디스가 엘프 멤피스를 만난 것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이어 클레어바이블을 찾아가기 위한 미로에서 미르가지아에게 시달린 것에 맞장구를 쳤다. 미르가지아의 표정이 이상하게 굳은 듯 보였지만 모두는 웃어넘기며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한참이 지나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자 제르가디스는 찻잔을 내려놓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제르가디스를 바라보며 미르가지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간이여. 이계 묵시록은 가능성의 한 가닥을 자네에게 말해주는 것일 뿐, 자네의 몸을 고쳐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단지 이 세계에 산재해 있는 지식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야.”
미르가지아의 말에 제르가디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왜 그것을 진작 알려주지 않았냐는 거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난 자네가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가?”
“…….”
제르가디스가 대답 없이 찻잔을 바라보았다. 주홍빛의 찻물이 바닥에 살짝 고여 있었다. 그러나 찻물은 가루 하나 없이 맑아 잔의 바닥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두 가지의 찻잎을 함께 우려냈는데도 상당히 맑지? 맛이나 향 또한 하나로 어우러져 원래의 것보다 깊은 맛과 향을 내고 있어.”
“……아아, 차는 정말 좋았어.”
“각각의 차는 사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것들이다. 내가 배합하기에 좋은 비율을 찾아내 만들어본 것이야.”
“그런가? 꽤나 고생했겠는걸. 차를 배합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던데.”
미르가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합성수의 몸 역시 다를 것은 없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여러 이점도 단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합성수인 자네의 몸이 순수한 인간의 것보다 낫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뜸을 들이는 짧은 시간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다. 제르가디스가 초조한 눈빛으로 미르가지아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 입술이 전하는 것은 희망? 아니면…….
“방법은 없다.”
미르가지아의 단호한 한마디는 곧 공간 안의 정적으로 이어졌다. 모두의 마른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마저 들릴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공기가 주위를 메웠다.
“여기 유리병 안에는 두 찻잎이 섞여 있다. 하나하나 분리해내는 것은 귀찮고 까다롭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이지.”
미르가지아가 유리병을 들어 제르가디스가 앉아있는 탁자에 내려놓았다. 붉고 노란 잎사귀들이 원래부터 하나인 것 마냥 뒤섞여 있었다. 미르가지아가 유리병을 흔들자 모래가 흐르듯 사르락 움직였다.
“그러나 이것들을 함께 우려낸 차는 다시는 분리해낼 수 없다. 무슨 방법으로도.”
제르가디스는 조용히 찻잔을 양 손으로 잡고 눈을 감았다. 잔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보다는 손에 들어가려는 힘을 간신히 억누르는 제르가디스 본인이 더욱 힘겨워 보였다. 꽉 다물린 입술 역시 상반된 두 개의 힘에 떨리고 있었다.
‘쨍그랑!’
갑작스런 소음에 제르가디스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아…… 미안해요. 잔을 떨어뜨려서. 수건이 어디에 있지…….”
리나가 들고 있던 잔을 놓친 것인지 그녀의 찻잔이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있었다. 남아있던 차 몇 방울이 테이블 아래의 바닥에 방울방울 부딪히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미르가지아가 닦을 것을 가져오는 사이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고, 제르가디스는 그 동안 찻잔을 잡은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가우리는 그런 제르가디스를 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이 무슨 말을 꺼내든지 그것이 제르가디스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건조한 공기 덕에 목이 말라버려 식도 위를 지나가는 찻물이 유난히도 따갑게 느껴졌다.
대강 정리를 마친 후 미르가지아가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이 세계의 그 어느 지식과 유물을 뒤져보아도 자네가 원하는 답은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장난도, 농담도 아니야.”
“…….”
가우리가 다시 한 모금 차를 마셨다. 분리되어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던 찻잎은 차로 우려내지며 분명 그 가능성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 가우리의 체내에서 소화되며 다른 성분으로 변하여, 존재할지 모르는 가능성마저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찻잎에서 차로, 그리고 차에서 영양분으로. 존재를 바꾸었기에 다른 의의로써 맛과 이로움을 준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차, 맛있네요.”
정적을 깨고 내뱉은 한 마디는 가우리의 것이었다. 모두는 찻잔을 들고, 쥐고 또는 떨어졌던 것을 바로잡으며 가우리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차는 밍숭맹숭한 물 같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좀 다른 것 같네요. 흔히 느껴지던 풋내나 떫은맛도 없고, 향도 톡 쏘듯 강하기보다는 은은하고. 두 가지의 차가 섞여서 이런 오묘한 맛과 향이 나는 건가요?”
“그런 셈이지, 인간이여.”
미르가지아가 긍정하자 가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찻잎을 나눠서 각각의 차가 어떤 맛인지 알아보고 싶은데요. 그것이 차 본래의 맛일 거잖아요. 그렇지만……,”
가우리가 잠시 말을 끊고 마른 숨을 들이켰다.
“두 개의 차를 한데 모은 이것 또한 새로운 차로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차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를 섞어 만든 이 차라면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잠시 후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제르가디스의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부서질세라 쥐고 있던 찻잔의 떨림은 어느 정도 사라져있었다.
가우리가 부드럽게 웃으며 찻잔을 미르가지아를 향해 내밀었다.
“한 잔 더 주시겠습니까?”
2012.09.24 작성
2013.01.13 슬레이어즈 팬카페 클레어바이블도굴단(http://cafe.naver.com/clearbible) 공개
2013.01.14 슬레이어즈 팬사이즈 린젤(http://linzel.net)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