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자.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영화 <써니> 중.
영화 <써니>를 보았다. 추석 특집으로 TV에서, 그것도 감독판을 보여주더라. 영화 상영 당시에는 촌스러울 것 같다며 별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영화였다.
잠자고 있던 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사실, 중학생 시절까지의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한 것도 내 목소리를 높여본 적도 없다. 성당에서 단체활동을 해왔지만 그것은 남이 시키는 대로 레일 위를 굴러갔을 뿐.
최초로 용기를 낸 것은...... 다름 아닌 고등학교의 교내 만화 동아리 입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다 나온다. 왜 내가 이런 곳에 가입하는 데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오들오들 떨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일주일에 한 번 C.A 활동하는 게 다야, 시간 빼앗길 것도 없어, 공부도 잘 할게, 성당도 잘 다닐게(<<우리집의 중요 포인트). ......나중에는 시간 많이 빼앗겼죠. 엄마, 싸릉해요♡
두 번째의 용기는 슬램덩크 31권 구입이었나. 더럽고 낡은 대여점 책이었는데 만화책을 "대량으로" 산다는 것에 지레 겁을 먹었었다. 추석 차례를 지내고 밥 먹을 때 엄마에게 은근슬쩍 물어보았던 듯.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그래"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이 반대해온 것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반대하신다 해도 그것을 꺾고 해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부모님의 반대로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또한 사실.
왜 불평만 했을까, 왜 좀 더 용기내지 못했을까. 만화 동아리를 입부하며 어설프게나마 엄마를 설득했던 것처럼, 그 이외의 반대에 부딪혔을 때에도 좀 더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 볼 것을. 나는 소리만 빽빽 질러댔던 것 같다.
물론 지금 생각해봐도 부모님이 원망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 논리란 것이 20여년 간 먹혀들지 않아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니까. 그래도, 그래도 더 달려들고 설득해볼 것을. 아니면 반대를 무시하고라도 용기를 내 도전해볼 것을. 이도저도 안되면 차라리 가출이라도 해 볼 것을, 여행이라도 떠나버릴 것을.
나는 겁쟁이였다. 그러나 세상은 용기있는 자의 것이다. 그러니 불평도 삼가야겠지.
대학에 간 이후로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여전히 부모님의 족쇄는 나를 억눌렀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무던히도 어려웠다.
인생을 쟁취할 용기를 준 것은 국토대장정, 그리고 온갖 동인활동.
......실패했다. 부산에서 힘차게 걷기 시작했지만 일주일만에 눈물콧물 다 짜며 서울로 돌아왔다. 나 자신이 한심했고 다른 사람들이 부러웠다. 한참을 주눅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실패가 용기가 되었다. 내가 선택한 거의 최초의 일인 셈이었으니까,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어. 그 때의 용기가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일 것이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달려들어라. 싸워라, 쟁취해라. 다소 저돌적이다 할 수도 있는 모습에 주위 사람으로부터 질타를 받은 일도 있지만, 나 자신은 후회하지 않아. 내 인생을 돌이켜보며 웃을 수 있으니 난 잘 한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주위에 피해를 입힌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진상'에 불과하겠지. 그 선을 잘 지키려 오늘도 노력해본다.)
동인활동, 그것은 이 소심하기 그지없는 김지희란 사람에게 거대한 기둥이 되었다. 요즘은 슬레이어즈 팬카페의 사람들이 나를 보고 소심하기는커녕 앞에 서서 휘두르는 용기있는 사람으로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아니, 그렇지 않았어요. 지금은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하니까. 예전에는 뭐... 풉;
이렇게 스스로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더 나아가고 싶으니까. 그리고- 이걸 중2병이라고 봐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보아주고 내 손에서 나온 글과 그림을 보아주고 나라는 사람을 기억주기를 바라니까.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내가 용기를 내야한다는 것을 동인활동에서 배웠다.
코스프레, 힘들게 준비했지만 사진기 앞에서 부끄러워했더니 죽도 밥도 안되더라. 웃어야했다. 과장되고 유치하다 생각되더라도 포즈를 취해야했다. 며칠 밤을 새가며 죽도록 고생했지만 만드는 것이 신나더라. 과정은 즐거웠다. 그런데 남은 사진속의 내가 주춤거리고 있다면? .......기억은 퇴화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중학생 때 했던 로오나의 코스는, 글쎄, 재밌게 만들었겠지만 기억은 잘 안 난다. 다만 사진 속의 내가 엄청 구렸다는 것만 기억나니까. 그 이후로는 사진기 앞에서 당당해지려 노력했다ㅠㅠㅠㅠ
소설, 많은 분들이 보아주고 다음 편을 기다려 준다.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어릴 때에는 사실 자랑도 하고 싶었다, 나 이만큼 쓴다고(풉). 지금은 남보다는 자기 만족을 위해 쓴다...ㅎㅎ 그리고 나름의 책임감도 생겼다, 한창 장편을 연재하다 중단된 것을 보면 아쉬웠으니까 난 그리 되지 말자고 생각하느라고. -그런데 나도 거의 연재중단인 셈이라, 으하하. 여튼 마음은 그렇다구요.
개인지나 굿즈는 '돈 주고 사는 거다'라는 생각에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고. 프로의식을 가지려 생각하게 되었고.(그런데 한 번 팔아먹은 그림을 또 쓰고 있고(?)).
온리전에서는 행사 준비와 진행이라는 것에 대해 배웠다. 나름 사업주의 책임감과 어려움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배운 것도 같고. 아이고, 두 번은 못할 것 같아. 다시 주최자리 맡는다 해도 이벤트 다 빼고 배포전! 절대 배포전!!
무엇보다 중요한 것. 동인활동을 통해 즐거움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점이란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즐겁고 기쁘고 가슴이 뛰는 것.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 합창공연이나 코스프레 무대공연, 국토대장정 해단식, 이런 여러 사람들과의 하모니에서 느껴왔던 그것을 아마 지속적으로 느끼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것보다는 그 강도가 덜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훨씬 행복한, 나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목적으로 삶기에 충분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러한 삶의 목표의 설정은 ......내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없던 내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들. 내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니라고, 누구보다 훌륭하게 즐겁게 잘 살아왔다고,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자신없던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니까 얼른 결혼을 하세요(응?).
언제나 이야기는 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실컷 주절거렸다. 다음에 제 정신으로 좀 더 다듬어 보아야지:)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 빠샷!!